[Blue Archive] I Became a Superhero in Kivotos

Chapter 16



1.

꿈을 꾸었다.

그것은 꿈이라기엔 너무나 생생해서 현실인지 꿈인지조차 구분하기 어려운 그런 꿈이었다.

새빨간 하늘, 부서진 생텀타워, 망가진 도시.

아우성치는 시민들과 절망한 학생들의 목소리가 도심에 한가득 울려퍼진다.

세상이 멸망하는 순간이 이런 모습일까.

제대로 숨을 내뱉기조차 어려운 광경에 이가 뿌득 갈리기를 잠시.

“…내가 더 노력했으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거다.”

“내가 무능했기에, 내가 멍청했기에 이렇게 된거다.”

“다 내가…….”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신을 책망하는 목소리. 절망으로 가득한 목소리. 그 진원지로 고개를 돌려보니 그곳에는 나에게 아주 익숙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어?’

‘내’가 있었다.

새하얀 머리칼에 푸른 눈동자.

온갖 히어로 장비를 착용한 내가 멸망해가는 세상을 바라보며 절망에 잠긴 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잠시 당황했지만, 나는 이윽고 입을 벌리며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왜 우는 것인지, 세상이 어째서 이따구가 된 것인지는 더 이상 눈에 들어오지 않게 되었다.

애초에 이 시점이 어느 시점인지, 무슨 상황이 벌어졌는지는 대충 짐작이 갔으니까.

지금 내가 놀라게 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저, 저건 설마, 그건가? 그거 맞지?’

꿈 속의 내가 가슴 부근에 착용하고 있는 푸르른 빛.

역삼각형 모양의 패드. 그 안에서 휘몰아치고 있는 푸르른 색의 에너지.

‘아, 아아, 아이언맨 슈트……??’

내가 생각하는 그거냐? 하는 의문이 들 무렵.

길바닥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던 ‘내’가 몸을 일으켜세우더니 이내 절망을 씻어내고 결의의 눈빛을 했다.

헉. 설마. 보여주는건가?

그리고.

나의 손이 가슴께로 올라가더니-

툭툭-

촤르르륵-

가슴팍의 패드를 건드리자 순식간에 전개되는 슈트!

역시나 내가 생각하는 그것이 맞았다.

‘…미친.’

사용자의 신호를 받아들인 패드가 전개되며 붉은 색의 강철 슈트가 순식간에 나의 전신을 뒤덮었다.

붉은색. 그리고 황금색.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배합의 슈트가 장착되며 영화 속에서나 보던 모습이 현실에 드러난다.

나의 목표, 내가 생각하는 히어로의 종착지가 바로 그곳에 있었다. 그에 나는 감격했다.

‘시발. 존나 멋있어……!’

아이언맨 슈트를 진짜로 만들었다고? 실화냐, 이거?

대체 어떻게 한거지? 이거 미래시냐? 미래시겠지?

‘당장 나에게 예언 능력이 있다고 말해!!!!!’

세상이 멸망한 이유? 궁금하긴 했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게 아니었다.

지금 아이언맨 슈트를 착용한 내가 눈앞에 나타났는데 그게 중요하겠냐고!

‘나노 슈트는 아니고, 부분 결합 슈트인가? 자세히보니 등과 다리 부분에도 장치가 붙어있어. 저 부분에서 슈트가 전개되면서 부분 결합을 완성시키는 형태일까? 손과 다리 부분에 푸르른 빛이 있는 것으로 보아 ‘리펄서’도 재현해낸거 같은데, 그럼 제일 중요한 동력원인 아크리액터는 어떻게-’

나는 어느 순간부터 입을 틀어막았다.

그리고 마음 속 깊이 소원했다.

‘이거 미래시겠지? 제발 그렇다고 해줘.’

세상이 망하는건 내가 막으면 된다.

설령 이것이 꿈에 불과해도 나는 언제나 위험을 인지하고 있었으니. 꿈 속 상황이 펼쳐지지 않도록 막으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저것은, 아이언맨 슈트는 꿈이어선 안된다.

그것은 나의 사랑, 나의 삶, 나의 영혼.

오래 전부터 마음 속에 품고있었던 소망. 어린 시절부터 나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 남자의 로망.

내가 아이언맨이 된다.

이 사실이 단순한 허상이란건 용납할 수 없었다.

아이언맨 슈트가 환상이 아니길 마음 속으로 간절히 빌고 있던 그 순간, 하늘을 올려다보던 꿈 속의 내가 잠시 어딘가로 고개를 돌리는 것이 보였다.

이내, 나는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지금 나를 보고 있…….’

순간, 꿈 속의 나와 눈이 마주친 듯한 느낌.

어떻게? 라는 의문도 잠시, 이윽고 그는 고개를 다시 돌리더니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내뱉었다.

“만약 내게 한번의 기회가 더 남아있다면, 그때는-”

내가 쉬이 넘겨들을 수 없는 말을.

‘……지금, 뭐라고 했-’

콰아아아─!!

당황하며 질문을 하기도 이전에, 아이언맨 슈트를 착용한 나는 순식간에 하늘로 날아오르더니 어딘가로 사라져버렸다.

그것으로 나의 꿈이 끝났다.

2.

“아.”

깨어나니 익숙한 천장이 있었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희미한 기계 구동음과 삑삑 거리는 홀로그램 키보드 소리. 익숙하디 익숙한 냄새까지.

초현상특무부 동아리실.

내가 깨어난 장소는 그곳이었다.

아니, 내 아이언맨 슈트가.

꿈 속의 광경을 되새기며 속으로 한탄하던 그 순간.

“깨어났나요, 나나시?”

나긋나긋하면서 고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귀여운 은발 엘프가 나를 반겼다.

히마리. 그녀는 평소와 같은 모습이었다. 내 얼굴을 보며 싱긋 미소 짓는게 괜히 미소녀가 아니다.

…귀 만져보고 싶네.

나는 상념을 곤히 접었다. 여전히 지끈거리는 몸뚱이를 문지르며 얼떨덜한 기색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히마리 선배. 제가 왜 여기에 있는거죠.”

“왜긴요. 당신이 찾아왔으니 여기에 있죠. 이제부터 당신은 저와 여기서 함께 지내게 될거랍니다. 어제 당신이 잠들기 전에 말해달라고 했잖아요?”

…뭣.

나는 모르는 일인데?

“……그, 함께 지낸다니.”

“저도 그렇고, 에이미도 아마 당분간은 여기서 나나시와 함께 지내게 될거에요. 미리 필요한 것들은 다 챙겨놓았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도, 도대체 그게 무슨 소리에요.

뜬금없는 동거 선언이라뇨!

내가 당황한 눈빛으로 히마리를 바라보았다. 그런 내 표정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히마리였지만 이내 뭔가를 이해했는지 급히 고개를 저으며 소리쳤다.

“아뇨, 아뇨! 당신이 생각하는 그거 아니에요!”

“……예?”

“진짜 아니니까요!”

“아, 네.”

아니면 말고. 아쉬운거지, 뭐.

“하아, 진짜 나나시의 머리엔 뭐가 들었길래 그런 생각만 가득한거에요? 분명 어제 저와 상의했잖아요? 다친 모습으로 바깥에 돌아다니면 학교에서 의심을 받을테니 당분간은 부실에서 지내기로.”

“아.”

그랬었지.

와카모와의 싸움 직후, 몸 전체에 난 상처를 보면서 든 생각이었다. 그래서 히마리에게 이를 상담하니 보안이 철저한 부실에서 지내자는 얘기가 나왔었다.

‘잠결에 까먹었었네.’

……근데 솔직히 이건 내 잘못은 아니지 않냐.

히마리 네가 의심가게끔 말했잖아!

물론, 이 생각을 그대로 말하진 않았다.

이 생각을 히마리한테 전하기도 부끄러웠고.

그래서 그냥 사과만 전했다.

“까먹었어요. 죄송해요.”

“……후후, 괜찮아요. 나나시가 이상한건 하루 이틀도 아닌데요, 뭐. 밀레니엄 최고의 천재 병약 미소녀 해커인 제가 다 이해해드릴게요. 전 객관적으로 이쁜 외모이니 그런 생각이 들어도 어쩔 수 없죠. 음음.”

“그건 뭐, 그렇죠.선배가 이쁘긴 하니까요.”

“…….”

히마리가 이쁜건 상식이긴 하지…….

내가 히마리가 내뱉은 자뻑을 그대로 되돌려주니 그 상태로 행동이 굳었다. 이내 붉게 물든 얼굴로 날 노려보기 시작하는 히마리.

나는 피식 웃으며 그녀의 시선을 무시했다.

“그러고보니 에이미는요?”

“하아. 또 저만 바보같이 반응했군요. …에이미는 지금 조사할 일이 있어서 잠깐 바깥에 나가있어요. 금방 돌아올 거에요.”

“그렇군요.”

그 말에 나는 다시금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며 찌뿌둥한 몸을 길게 뻗으며 기지개를 폈다.

쭈욱-

“흐읏…….”

“……?! 이, 이상한 소리 내지 말아요, 나나시!”

“예? 그냥 기지개 핀거 뿐인데요?”

“…….”

왜 저래.

나는 호들갑을 떠는 히마리를 지나쳐 부실 내에 비치된 화장실로 향했다. 뒤에서 뭔가 노려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지만 무시하기로 했다.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았다.

어깨 아래까지 자란 새하얀 머리칼과 푸른 눈동자.

객관적으로 수려한 외모에 조금 사나운 인상. 바라만 봐도 질리지 않는 얼굴.

“흠.”

…존나 이쁘긴 하네.

몇 번이고 보는 얼굴이지만 적응이 안된다.

화장도 안하고, 방금 자다가 일어난 얼굴인데도 이렇게 이쁠수가 있나? 여자는 원래 다 이런가?

‘그럴리가 있냐.’

피식 웃음을 흘리며 세안을 시작했다.

물로 가볍게 얼굴을 행구고 비누칠을 한다. 다음으로 물로 가볍게 행군 다음에는 클렌징폼을 바른 뒤 다시금 물로 씻어낸다. 그리고-

‘복잡하다, 복잡해.’

……이쁜 얼굴이라 그런지 대충 할 수가 없다. 어느샌가 세안 방법도 전보다 더 다양해졌다.

전에는 그냥 비누칠하고 끝이었는데. 이제는 그렇게 못하겠더라고.

머리도 감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제 몸도 다 나았으니 나가서 가볍게 운동이나 조금 할 예정이었다. 그래서 그냥 세안만 하고 화장실을 나왔다.

부실로 나오자 홀로그램을 마구 두드리던 히마리와 눈을 마주쳤다.

뭐라 말을 꺼내야할지 몰랐기에 그냥 히히- 하며 생긋 웃어보이니 왜인지 몰라도 얼굴을 붉히는 히마리.

“히마리 선배.”

“……왜 불러요. 나나시.”

“저 운동 좀 다녀와도 되나요. 이제 다 나은거 같-”

“아뇨. 안돼요.”

뭣.

말도 다 안끝났는데 차단당했다.

“저 진짜 가볍게 운동할 생각인데. 딱 조깅만.”

“그래도 안돼요. 제가 볼때는 나나시는 조금 더 쉬어야만 해요.”

“엥? 진짜 다 나았는데-”

“아직 다 안나았어요. 그러니 안돼요.”

…뭐임.

진짜로 내가 파악하지 못한 부분이 있나?

강직한 반응을 보이는 히마리에 나는 깜짝 놀라며 전신에 감각을 돌려보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느껴지는거라곤 빠르게 회복되어가는 체력 뿐.

잉. 딱히 이상한거 없는거 같은데-

“나나시. 선배 말 들으세요.”

“……넵.”

포기하기로 했다.

나는 얌전히 히마리의 말대로 침대에 누웠다.

오늘따라 히마리 선배가 무섭다. 나를 걱정하는게 보이기는 한데, 묘하게 강압적이다.

물론 기분이 나쁘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살짝 나쁘지 않을지도?’

이쁜 미소녀가 나한테 집착한다? 으흐흐.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끌어내리며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들었다. 근데 막상 핸드폰을 꺼냈는데 할게 없다.

‘…인터넷은 지금은 보기 좀 그런데.’

무슨 이야기가 나오고 있을지 모르겠어서 좀.

그래서 나는 그냥 히마리나 구경하기로 했다. 뭔가에 집중하는 은발 엘프 병약 미소녀? 이걸 참아? 인터넷보다 이게 더 재밌을거 같았다.

힐끗-

침대에서 꼬물거리며 히마리를 빤히 바라보고 있던게 몇 분이 지났을까, 홀로그램을 터치하던 히마리가 이내 한숨을 푹 내뱉더니 내게로 고개를 돌렸다.

“나나시, 뭔가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나요?”

“아뇨. 그냥 보고싶어서 본건데요.”

“…….”

“심심해서 보는거니까 하던 일 하셔도 돼요.”

내 말에 히마리의 얼굴이 새빨게졌다.

그녀는 다시금 한숨을 푹 내쉬더니 다시금 눈앞의 홀로그램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삑…. 삑….

다만 자판을 두드리는 속도가 전보다 더 느려진 것은 아마 나의 착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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