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5
1.
콰앙─!!
가면을 쓴 두 소녀가 부딪혔다. 어느새 총 따위는 잊어버린 채, 오로지 서로의 주먹을 휘두른다.
콰앙─!!
히마리는 화면 가득 울려퍼지는 충격음에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에이미는 마치 영화라도 감상하듯 과자에게로 뻗던 손을 멈추며 화면만을 보았다.
그녀들 뿐만이 아닌, 화면 너머에서 뉴스를 지켜보던 모든 이들이. 모든 시민들이 그러했다.
처음 실크의 싸움을 지켜보던 그들은 환호했다.
적들을 상대로 압도적으로 싸워나가는 영웅을 바라보며 정의의 승리를 실감했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실크의 몸에 핏물이 늘어갈수록 그들의 표정 또한 점차 다르게 변해가기 시작했다. 환호에서 경악으로, 이내 충격으로.
그리고 지금에 이르러, 그들은 그 어떤 행동도, 반응도 보이지 못한 채 화면에 집중했다.
콰앙─!!
두 소녀가 서로에게 주먹을 뻗는다.
다리를 휘두르며, 더러운 땅바닥을 구른다.
그 과정에서 영웅의 숭고함이나, 악당의 치졸함 따위는 없었다.
그저 처절했다.
영웅은 악당을 설득하려고 하며, 악당은 보이지 않는 눈물을 한없이 흘려보내고 있었다.
영상 속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지만, 일전의 대화는 그들의 상황을 어림잡아 짐작케했다.
그들의 상황과 이유를.
콰앙─!!
단 한번의 일격. 그 안에 담겨진 물음과 대답.
소녀들의 격전은, 이제 단순한 싸움이 아닌 서로에 대한 증명이자 호소였다.
“후배, 님.”
“……나나시.”
누군가는 자신의 친구이자, 후배의 이름을 불렀고.
“실크라, 기억해놔야겠어.”
“……보기 힘들구만.”
“와-오. 엄청난 모습이네……?”
누군가는 영웅이 보이는 모습을 기억했다.
“…이게 당신의 해답입니까, 실크.”
“멋지군. 저것이 바로 ‘영웅’인가. 신념과 이성, 경험과 지혜, 모두가 우러러볼 수밖에 없는…….”
그리고 또 누군가는,
소녀가 내린 해답에 흥미를 보였다.
콰아아앙─!
이내, 지금껏 들려왔던 소리보다 훨씬 더 큰 충격음이 화면에 울려퍼진 직후.
한 사람이 쓰러졌다.
여우 가면을 쓴, 검은 머리의 소녀가 주저앉았다.
키보토스의 영웅, 실크는 그런 소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흰색과 검은색. 비슷하면서 다른 여우 가면. 영웅과 악당.
마치 대비되는 듯한 두 사람의 구도에 상황을 중계하던 리포터도 말을 잃고 화면을 지켜보았다.
“내가 이겼어, 코사카 와카모.”
“후후, 그렇네요. 완전히 패배했답니다.”
그들은 힘겹게 서로를 지켜보았고, 영웅은 승리를 말하며 악당은 패배를 받아들였다.
그 장면에 많은 시민들은 침묵했다.
힘겹게 숨을 내쉬는 영웅의 뒷모습에는 오직 책임과 의무라는 무게감만이 남아있는 것처럼 보였다.
안도와 기쁨이 몰려왔지만, 그와 동시에 씻어낼 수 없는 걱정과 혼란이 시민들의 마음 속에서 울렁였다.
하지만.
그런 시민들의 감정을 알아차렸다는 듯이.
척─!
영웅은 하늘 높이 팔을 들어올렸다.
마치, 자신의 그런 모습을 애써 숨기려는 듯이.
그리고.
시민들은 그 모습에 울렁이는 감정이 밀려나고 그곳에 환호와 기쁨만이 자리잡는 것을 느꼈다.
“와아아아아─!!”
“실크! 실크! 실크! 실크-!”
“제엔장! 믿고 있었다고, 실크-!”
[여러분, 보십시오! 우리의 영웅 ‘실크’가 재액의 여우를 끝내 쓰러뜨리고 승리를 선언합니다!]
그녀는 이후로도 아주 길도록 팔을 내리지 않았다.
영웅은-,
시민의 걱정을 받는 존재가 아닌.
걱정을 덜어주는 존재라는 것을 증명하듯이.
영웅의 승리 선언이 키보토스 전역에 퍼져나갔다.
많은 시민들은 환호하고, 정의의 승리를 기뻐했으나.
적지 않은 사람들은 화면에 가려진 영웅의 뒷모습을 머릿속에 기억했다.
언젠가, 훗날 마주하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머릿속 한켠에 넣어두면서.
2.
책임(責任).
그것은 블루 아카이브의 주제 중 하나였다.
동시에,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이기도 했다.
어른으로서의 책임, 영웅으로서의 책임.
아이들의 꿈과 미래를 실현시키고, 그 고통을 대신하는 어른으로서의 책임.
큰 힘을 지닌 존재로서 약자들을 지키고, 악에 대적해야만 하는 영웅으로서의 책임.
나에겐 무엇이 더 가치있고, 무게있는 책임인가?
어째서 나는 영웅이 되기를 택했고, 영웅으로서 활동하고 있는가?
와카모의 물음이 마음 속에서 휘몰아쳤다.
‘너의 목적은 무엇인가? 왜 영웅 행세를 하지?’
글쎄다. 어쩌면 나는 이런 본질적인 질문에서 도망가고 싶어했는지도 모른다.
그것도 아니면 내가 이 세계에 떨어진 과정이 너무나 갑작스러웠기에, 나라는 존재 자체에 대한 고민을 하기엔 너무 어려웠을지 모르지.
이제 막 스무살이 되었던 나는 어느날 키보토스의 학생의 몸으로 빙의하게 되었다. 생물학적으로는 학생이 되었으나, 나의 정신은 여전히 스무살이었다.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게임 속 아이들과 똑같은‘학생’이었던 나 자신.
그렇다면, 나는.
나는 어른일까, 아니면 영웅일까.
혹은, 아직 학생일까.
나는 답했다.
“모르지.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그 해답은 내가 내리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저, 부정만을 했다.
모르는 일을 안다고 할 수는 없었다.
나는 나이만 성인이 되었을 뿐이지, 나 자신을 ‘어른’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리고 동시에 학교를 졸업해 성인이 되었기에 ‘학생’ 또한 아니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또한 나의 미숙함과 부족함을 인지하고 있기에 아직 나 자신을 진짜 ‘영웅’이라고 칭하기도 어려웠다.
“웃기는 놈 아니냐? 학생도, 어른도, 영웅도 되지 못한 놈이라니.”
모순적인 존재.
그것이 나를 표현하는 단어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깊게 고민하지 않았다.
이런 모순적인 부분을 받아들이는 것도, 내가 앞으로 더 성장할 수 있는 방향성이라고 믿었으니까.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내가 영웅을 동경하는 것은 아직 ‘학생’ 시절의 순수함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고.
내가 영웅의 책임을 다하고자 하는 것은 ‘영웅’이 가져야할 덕목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며.
내가 그럼에도 시민과 학생을 구하고자 노력하는 것은 ‘어른’으로서의 책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그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그러니 상관없겠지.”
나는 모순적이다. 너도 그럴 것이다.
사람은 언제나 그렇다. 우리 모두는 모순적이다.
선과 악이 공존하며, 좋음과 싫음이 맞물리며,
사랑과 증오가 함께 존재한다.
하지만, 모순적이라 해서 살아가면 안된다는 이유가 있는가? 오직 한쪽으로만 치우친 존재만이 인간이라고 불릴 자격이 있는가?
아니다. 이건 그런 이야기가 전혀 아니었다.
“네가 되고 싶은 존재는, 네가 결정하는 거야.”
이것은 나 자신에게, 그리고 그녀에게 전하는 말.
언젠가 이 무대의 진정한 주인공이, 어느 로봇 용사에게 건네는 축복의 말 한마디.
“그러니 차라리 머리가 복잡하다면, 무시해.”
“그런 고민 따위는 미래의 네가, 혹은 다른 사람이 대신해서 해주겠지.”
“지금의 내가 부족하다면, 조금 더 성장한 이후에 고민해도 늦지 않아.”
지금 당장에도 눈물 흘리고 있을, 한 여우 소녀를 위한 위로이자 고민 상담.
그녀의 과거를 어렴풋이 이해하고 있는 나만이, 오직 이 순간에선 나만이 가능한 위로의 한마디들.
“아무리 고민해도 도저히 풀리지 않는다면, 차라리 날 찾아와. 내가 대신해서 고민해줄테니까.”
“그걸로도 안되면 내가 다른 사람에게 손을 빌려서라도 너의 고민을 해결해줄게.”
너와 내가, 그리고 모두가 함께.
그것이 내가 내린 해답이었다.
그녀가 나에게로 던진 질문에 대한 대답.
나의 목적은 무엇인가?
너는 영웅인가, 영웅을 모방하는 자인가?
“글쎄다.”
“그저, 영웅이 되기를 꿈꾸는 사람일지도 모르지.”
과분할 정도로 큰 힘을 얻었다.
이 능력에 대한 ‘책임’을 다하고 싶었다.
그저 그뿐이다.
3.
“후후후, 완전히 져버렸네요. 이제 저항할 힘도 없답니다.”
“……와카모.”
“걱정마시어요. 저는 도망갈 생각 따위는 없으니까.”
와카모는 영웅과 나누었던 상담을 기억했다.
자신이 품고있는 고민을 알고있다는 듯이 말하는 그녀를 보면서, 처음에는 불편했다. 누구 맘대로 남의 마음 속을 들여다보는 것일까, 하고 말이다.
하지만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어째서인지 깊이 안도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내가 틀리지 않았구나.
그 모든 불행이 나의 잘못이 아니었구나.
그저, 선택과 시기가 맞지 않아서.
“…그거면 충분하답니다.”
지금껏 누구도 내게 그런 말들을 전해주지 않았다.
그녀가, 이 세상에서 실크가 유일했다.
너무 늦었다고 생각했던 자신이지만, 실크는 또한 자신에게 말해주었다. 너에겐 아직 기회가 있고, 행복해질 자격이 있다며 말이다.
그 위로에 점차 마음 속에 자리잡았던 절망과 고통이 씻겨나가는 듯했다.
처음 느껴보는 감각, 처음 들어보는 위로의 말.
그에 재액의 여우가 아닌, 와카모의 정신이 고개를 들고 혹시나 하는 희망을 품었다.
그렇다면.
당신이 말한대로 내가 그럴 수 있다면.
자신이 행복해질 수 있다면, 기회가 있다면.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내가 선택할 수 있는다면.
‘저는, 당신의 곁이 좋답니다.’
영웅과 악당으로 만난 우리 둘이지만.
와카모는 실크라면, 자신의 이런 결점마저도 받아들여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품었다. 아니, 확신했다.
그녀의 곁이라면, 자신의 과거따위 단 하나도 남김없이 지워낼 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재액의 여우가 아닌, 그저 코사카 와카모로써.
죄수가 아닌, 학생으로써 살아갈 수 있을까.
‘가능하겠지요, 당신이 있다면.’
그녀는 자신이 영웅을 꿈꾸는 자라고 하지만, 직접 싸워본 자신이기에 내릴 수 있는 결론이 있다.
“당신은 영웅이에요, 실크.”
“…….”
“이런 저조차도 이겨내고, 당신을 인정하게 만들었으니 영웅이 아니겠나요. 후후후.”
“그러냐.”
그녀는 별다른 감흥을 못느끼겠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와카모는 그런 모습에도 즐거움을 느꼈다.
그토록 비틀리고, 망가져있던 자신을 이렇게나 변화하게 만들어놓고 저런 초연한 태도라니.
참 재밌는 영웅이면서, 더 깊게 알고싶어지는 소녀가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말했다.
“당신이 저를 이렇게 만들었으니, 책임져주셔요.”
“……그게, 무슨 소리니. 와카모야.”
당황하는 실크를 보며 와카모는 웃었다.
역시나, 이런 자신의 태도를 예상하지 못한 모습.
와카모는 멈추지않고 더욱 그녀에게 다가가기로 했다. 그녀는 이제 적이 아닌, 동경하는 존재였으니.
“당신께서 말씀하셨죠? 언제든지 고민이 생긴다면 자신을 찾아오라고. 자신이 대신해서 해결해주겠다고.”
“고민이 해결되지 않으면 오라고 했잖아!”
와카모는 웃음을 흘리며 무시했다.
“당신께서 누군가를 해치지않기를 바라신다면 그리하도록 하겠어요. 제가 사람들을 돕기를 바라신다면 역시나 그리하겠어요. 다만-”
“……다만?”
“당신을 지켜보는 것만은 허락해주시어요.”
귀찮게는 굴지 않겠다.
그녀가 영웅인 이상, 그녀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음을 안다. 그저 자신이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
실크를, 그 안에 든 소녀를 알아가는 것.
“그것 하나면 충분하답니다.”
간절히 꺼낸 소원의 말에 실크는 어딘가 고민하는 듯한 기색을 보이더니 이내 푹-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허탈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 마음대로 해라. 나쁜짓만 안하면 나도 신경쓰지 않을거니까.”
“후훗, 좋네요. 네, 좋고말고요.”
“하아, 이게 대체 뭔 상황인지. 피곤하다, 피곤해.”
와카모는 즐겁다는 듯이 미소를 흘렸다.
온 몸에 상처를 입고, 바닥에 쓰러진 그녀였지만 이제 그곳에는 재액의 여우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코사카 와카모라는 소녀만이.
이제는 영웅을 동경하는 한 명의 소녀만이 있을 뿐.
그것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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