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09
1.
실시간으로 불어나는 적들의 병력.
로봇들에게 공격을 감행한 직후, 폐허의 로봇들은 순식간에 나에 대한 정보를 공유했는지 사방에서 몰려들고 있는 중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로봇으로 이루어진 파도가 몰아치는 듯한 광경이 연출되었다.
압도적인 수. 가히 무한에 가깝다고 여겨지는 숫자의 로봇들이 쏟아져내린다.
동서남북, 그 어느 방향을 돌아봐도 로봇이 보이지 않는 곳이 없었다.
인해전술, 아니 기해전술(機海戰術)이 이런건가?
문자 그대로 바다와도 같은 수의 병력들이었다.
“……어, 음.”
이 정도로 몰려올 것이라곤 예상 못했는데.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쓰게 웃었다.
타노스 군단의 앞에 선 캡틴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아니, 타노스보단 울트론 군단에 가깝나.
다만 차이가 있다면 나는 공간을 넘어서 도움을 줄 동료들이나, 함께 싸울 어벤져스가 없다는 점.
‘망할, 이래서 동료가 필요한건데.’
나는 실없는 생각을 이어가며 방패 쥔 손을 강하게 쥐었다. 금방이라도 전투에 돌입할 수 있게 전신에 긴장을 끌어올려 준비를 하였다.
숨을 고르고 전신에 경(勁)을 퍼뜨렸다.
기용 가능한 전력을 쏟아부어 적들의 수를 최대한 줄이겠다는 일념 하에 정신의 날을 세웠다.
초감각을 넓고 세밀하게 흩뿌리며, 전신에 힘을 불어넣으며 긴장 상태를 유지한다.
지금 상태라면 총알이 발사되는 속도보다 방아쇠를 당기는 손가락의 움직임을 읽고 내가 움직이는 속도가 더 빠를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나는 로봇들과의 전투를 대비했으나.
이상하게도 전투는 벌어지지 않았다.
“……?”
대치 상태가 몇 분간 유지되었을 순간, 나는 이 상황이 어딘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당장이라도 내게 달려들 듯이, 불길한 소음과 신호를 주고받으며 렌즈를 빛내는 로봇들. 하지만 어째서인지 저들은 나를 바라보며 그 어떤 행위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내게 충분한 거리를 유지한 채로 말이다.
마치 싸움 구경을 하듯, 원형으로 둘러싸서 나를 바라보는 무수한 로봇들의 시선.
도저히 읽어낼 수 없는 시선들에 나는 표정을 팍 구기며 자리에서 멀어지고자 천천히 발을 옮겼다.
그런 상황에도 로봇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뭐지?’
당혹스러움을 넘어 기이하다.
아까까지만 해도 당장 칩입자를 제거하겠다는 듯이 움직이던 녀석들이 지금은 행동을 멈춘다고?
왜?
어째서?
무슨 이유로 저런 행동을 하는걸까, 하고 의문을 품을 무렵이었다.
점차 마음 속 경계심이 당혹감이나 어이없음이라는 감정으로 그 결이 달라져가던 순간.
삐이이이──.
“……?!”
경종이 울려퍼졌다.
내 초감각이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동시에.
콰아아아아아──!!!
하늘이 굉음을 토해냈다.
햇빛을 가리던 구름을 뚫고 강철로 된 쇠못과 같은 무언가가 나를 노리고 쇄도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간혹 창처럼 보이기도 했고, 때로는 거대한 총알과도 같이 보이기도 했다.
나는 저것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아니, 현대인이라면 모를 수가 없었다.
“미사일은, 시발! 너무한거 아니냐고!!!!”
강렬한 불길을 토해내며 추진하는 미사일.
그것이 노리는 것은 바로 나였다.
또한 동시에.
타타타타타타탕─!!!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쏟아지는 총격까지.
나는 헛웃음을 내뱉고 이를 악 물었다.
아무래도 폐허의 주민들은, 나를 죽이고 싶어서 안달이 난 모양이었다.
끔찍한 악의가 느껴졌다. 나를 배제하겠다는 의지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공격이었다.
대체 왜? 내가 누군줄 알고?
의문이 머릿속에서 휘몰아칠 무렵, 목소리가 들렸다.
보다 정확히는, 초감각이 누군가의 의지를 잡아냈다.
‘사명을 거부한 자. 우리의 대적. 그대는 모든걸 잊었으나,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의 일.
그것이 내가 공격받는 일이라고?
그렇다면.
“좆까. 시발놈들아.”
내가 해야할 일은 정해져있었다.
반드시 살아남아서, 저들을 쓰러뜨리겠다.
그게 내 선택이었다.
내 머리 위로 떨어지는 미사일을 바라보며 비릿하게 웃었다. 그리고 초감각을 열었다.
살아남기 위해서.
콰아아아아아아앙──!!!!
굉음과 함께 터져나온 폭발이 주변 일대를 휩쓸었다.
히이로는 어렴풋이 직감했다.
지금 이 사건은 앞으로 많은 변화를 만들겠구나.
폐허에서의 변화. 이 일은 어쩌면 밀레니엄 뿐만이 아니라 다른 곳에도 변화를 만들 것이다.
그래도 상관없다.
내가 전부 거두면 될 일이니.
2.
쿠구구구궁…….
지상에서 발생한 폭발.
그 여파는 폐허의 지하에도 퍼졌다.
같은 시각, 어느 공장에서 선생님과 함께 지하 아래로 떨어진 쌍둥이는 거센 진동 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서로를 껴안았다. 그 사이에는 불과 몇십초 전에 깨어난 한 안드로이도 소녀가 끼어있었다.
안드로이드 소녀가 무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대화 시도. 설명을 바랍니다.”
“서, 설명? 우리도 몰라! 대체 위에서 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냐고!”
모모이는 귀엽게 생긴 소녀의 물음에도 그저 비명을 지르며 더욱 강하게 안드로이드 소녀를 껴안을 뿐이었다.
“선생님! 지상에는 히이로가 있잖아요……!”
“…….”
미도리의 외침에 선생은 표정을 굳혔다.
지상에서 울려퍼진 굉음과 진동. 그 여파가 이곳까지 전달될 정도의 울림이면 얼마나 큰 폭발인 것일까.
선생은 지상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가늠하면서, 혹시 모를 상황에 아득한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혹여나, 히이로가 큰 위험에 빠졌다면 어쩌나, 하고.
하지만 이내 이성을 차린 선생은 지금 상황을 정리하고 빠르게 밀레니엄으로 돌아가는 것이 상책임을 깨달았다.
그 과정에서 히이로를 찾아도 괜찮으리라.
생각을 정리한 선생이 입을 열었다.
“우선, 최대한 빨리 밀레니엄으로 돌아가자. 지상에서 히이로 찾고 빠르게 복귀한 뒤에 상황을 파악해보자. 이곳은… 생각보다 더 위험한 장소인거 같아.”
“알겠어!”
“네, 네!”
“아! 선생님, 아리스도 데려가야 돼!”
“그래. 아리스, 너도 같이 가자꾸나.”
“……긍정. 본기의 심층 의식 제1반응으로 대상의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
…
…
“이 신호는……?”
“밀레니엄 근교에 위치한 장소, ‘폐허’네요? 강렬한 폭발 반응이라니… 대체 무슨 일이죠?”
“지금 폐허에서 이런 신호가 잡힐 이유가……. 저번처럼 문제아들이 뭐 잘못 건드리기라도 한건가?”
“…….”
유우카의 의문에 노아는 침묵하며 표정을 굳혔다.
폐허. 자신이 파악하기로 지금 그곳엔 게임개발부의 쌍둥이와 선생님, 그리고 나나시 히이로가 함께 향해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일이 벌어진 이유는…….
“……잘 모르겠네요. 일단 조사해보죠, 유우카.”
“하아, 왜 갑자기 일이 터지는거야.”
노아는 모르쇠로 일관하며 유우카에게 태연히 말했다. 유우카는 머리를 쓸어올리며 한숨을 내뱉었다.
유우카가 슬픈 표정으로 일을 시작하는 모습을 뒤로 하고, 노아는 최대한 당황을 감추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실크, 괜찮은거죠?’
폭발 신호의 범위와 위력이 심상치않았다.
그런 공격에 휘말렸다면, 아무리 실크라도 멀쩡하지는 않을 것이다.
노아는 감출 수 없는 염려를 드러내며 자신도 빠르게 업무에 착수했다.
그리곤 속으로 자신이 도울 수 있는 일은 없는지 차근차근 고민하기 시작했다.
…
…
…
밀레니엄 폐허에 변화가 생겼다는 것.
그 변화가, 미사일로 인한 폭발이라는 것.
이 사실은 베리타스와 초현상특무부에게도 전해졌다.
“미사일……? 히이로! 괜찮나요!”
“왜 갑자기 미사일이 날아온거야! 히이로는 무사해?! 빨리 연결 좀 해봐!”
“망할! 교란 신호가 너무 많아서 안돼!”
다만, 다른 이들과 차이점이 있다면.
이번 일을 명확히 이해하고 있었기에, 남들보다 그 반응이 더욱 격정적이었다는 것.
이들의 구심점이자, 리더라 할 수 있는 히이로의 생사를 파악할 수 없자 이들은 크게 흔들렸다.
특히나 정신적으로.
그야말로 개판이 된 상황을 지켜보던 한 소녀, 바닥에 누워서 반라 상태로 있던 소녀가 입을 열었다.
공기처럼 지내던 현재까지와는 다른 분위기로.
“…내가 폐허로 갈게. 길을 알려줘.”
“에이미?! 안돼요! 대체 무슨 위험이 있을 줄 알고!”
“히마리 말이 맞아. 그곳엔 알 수 없는 위험 요소가 너무 많아. 그리고 이번 폭발도 마찬가지…….”
“이게 제일 효율적이야. 나 말고는 할 수 없는 일이잖아. 히이로를 지키는게 나의 임무야. 그러니 부장, 날 보내줘.”
“…….”
이즈미모토 에이미. 그녀는 본래 ‘초현상특무부’의 유일한 현장 요원이었다.
그동안은 히마리와 함께 활동을 해왔기에 동료의 소중함이나 친구의 존재를 알 수 없었던 그녀다.
히마리는 자신보다 선배였고, 자신이 지켜야 할 대상에 가까웠기에 친구 이상의 감정을 느끼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기에 새로 생긴 부원인 히이로의 존재는 에이미에게도 나름의 변화를 만들게 되었다.
같은 나이, 같은 학년, 그리고 효율을 추구하는 에이미와는 남다른 목표까지.
하나같이 에이미의 흥미를 자극하고, 탐구심을 일깨우는 요소들의 집합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히이로는 에이미에게 있어 친구 이상의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
효율만 추구하던 에이미가 처음으로 효율이 아닌, 진정으로 소중한 것이 있음을 알게 해준 존재였다.
그렇기에 에이미가 지키고 싶은 가치이기도 했다.
“안돼요.”
“부장!”
하지만 히마리는 에이미의 부탁을 허락하지 않았다.
제아무리 마음을 알아도 자신의 후배를 사지로 보내는 행위를 알 수는 없다는 이유였다.
“부장은, 히이로가 소중하지 않은거야?”
“……뭐라고요?”
“히이로가 소중하다면 당장 구하러 가야하잖아. 여기서 이렇게 머뭇거리고 있을 시간이 없다고.”
“…….”
히마리는 잠시 침묵하다, 이내 입술을 깨물더니 심통한 표정으로 말했다.
“안돼요. 보내줄 수 없어요.”
“부장!”
“히이로는 아직 안죽었어요. 그저… 신호만 끊겼을 뿐, 아직 그 아이는 살아있다고요.”
“그걸 어떻게 확신……!”
“전 알아요! 저번에 히이로와 이야기했으니까!”
히마리의 선언에 장내의 모두가 시선을 보냈다.
시선 속에서 히마리가 압박을 털어내며 입을 열었다.
“히이로는 오래 전부터 미사일을 경계하고 있었어요. 저와 몇 번이고 미사일 폭격을 대비할 방안에 대해서 논의하기도 했고요.”
“…….”
“히이로는 그때 불시에 습격을 당하더라도 자신은 어떻게든 살 수 있다고, 지금은 그저 다른 이들도 구할 방안을 찾는 거라고 했어요.”
“설마, 지금 이 순간을 예언한……?”
히마리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히이로가 이야기한 시기는 지금보다 더 미래의 일이었어요. 지금은 그저… 히이로도 알 수 없는 변수가 발생했을 뿐이겠죠.”
“…그러면 더더욱 구하러 가야하는거 아니야?”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니다.
초감각이 울리지 않았으니까.
“히이로의 초감각은 이 선택을 말리지 않았어요. 그러니 그 아이가 정말 위험했다면, 애시당초 폐허로 향할 일은 없었을거에요.”
“…….”
“…….”
히이로의 초감각은 미래예지의 영역에 가깝다.
이 내용은 디펜더스에 소속된 이들 대부분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리고 굳게 믿고 있는 사실이기도 했다.
정말로 위험한 상황이었다면, 초감각이 사전에 알려주며 히이로의 선택을 말렸을 것이라는 것.
그야말로 초현실적인 현상.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할 수 없는 분석이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히마리가 저 말을 꺼낸 순간 순식간에 혼란이 잦아들더니 이성을 되찾는 주변 이들이 보였다.
에이미 본인도 말이다.
“미사일이 날아갔는데, 살 수 있다고? 정말……?”
“근데 히이로의 초감각이 발동하지 않았다면… 이건 진실이라는건데.”
“……진짜 괴물이네.”
몇몇은 아직까지 의혹을 감추지 못했지만, 그저 의혹에 그칠 뿐이었다.
대부분 그 사실을 수긍하고 받아들이는 태도.
이미 몇 번이고 히이로와 함께 활동하며 초감각의 힘을 실감한 이들이었기에 나오는 반응이었다.
“후우, 잠시 흥분했네요. 순간 눈이 멀었어요. 죄송해요, 여러분. 그러니… 이젠 제대로 시작해보죠. 아무래도 그 여자도 알아챌 것 같으니까요.”
히마리의 지시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여자’라는 의미 모를 말을 하는 히마리였지만 이 자리에서 그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는 없었다.
익숙하다는 듯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일을 시작할 뿐.
“히이로를 돕도록 하죠, 저희.”
그리고 그 ‘일’이란, 자신들의 영웅을 돕는 것이었다.
아무도 모르는 배후에서 말이다.
3.
모든 일에는 인과(因果)가 있다.
원인과 결과. 시작과 끝. 풀이와 해답.
현실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에는 과정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는 필연적인 개념이자, 세상의 이치였다.
원인 없는 결과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세상 그 어떠한 것도 이유가 없는 것은 없다.
전문적인 개념으로는 ‘충족이유율’이라고도 한다.
하나의 사물이 존재하고, 한 사건이 발생하고, 하나의 진리가 생겨나기 위해서는 충분한 근거가 있어야만 한다.
B라는 결과가 발생하기 위해선 A라는 과정이 선행되어야만 한다. 또한, A라는 과정의 발생에는 C라는 원인이 존재해야만 한다.
이곳, ‘폐허’에는 그러한 인과가 전혀 없다.
생겨난 과정도, 시작점도, 원인도 알 수 없는 그야말로 미지(未知)의 영역.
키보토스 최고의 기술력과 정보력을 자랑하는 밀레니엄에서도 폐허에 대한 정보는 현저히 적었다.
그저… 알 수 있었던건 폐허가 과거 총학생회장이 관여한 땅이라는 사실 뿐.
키보토스의 모든 ‘잊혀진 것과 사라진 것이 모여드는 하수구’라는 명칭의 의미는 아직 알 수 없었다.
여러 가지 추측이 떠올랐지만, 확신에 차서 말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었기에.
그런 의미에서 폐허로 향하는 여정은 불안으로 가득 찬 무모한 도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어떠한 정보도 없이, 그저 희망에만 매달린 채 나아가는 과거의 해적과도 같은 태도였다.
그런 점에서 나는 이번 여정에서 나 자신이 ‘실크’라는 사실을 밝히게 되는 것까지 염두에 두고 있을 정도였다. 폐허라는 공간은 그야말로 불가해함의 극치라고도 할 수 있었기에.
그렇게 쌍둥이와 함께 여정을 시작하고.
내가 폐허를 처음 본 순간, 떠오른 감정은 다양했다.
당혹감. 놀라움. 흥미로움. 그리고… 두려움까지.
인과를 알 수 없는, 혹은 알아채지 못한 것.
잊혀진 것과 사라진 것. 도시의 이면.
지금.
전력을 다해 초감각을 켠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이해했다. 보았다. 들었다. 깨달았다.
내가 지금 적진 한복판에 있음을 알았다.
이 장소가 얼마나 괴상망측한 장소인지를 알았다!
잊혀지고 사라진 것들이 모여 무엇을 이루었는지를 깨달았다!
시선이 느껴졌다. 악의가 느껴졌다. 연결된 존재들이 나를 주시하고 있음을 알았다.
“하하하!”
기가 차서 웃음을 터뜨리고 말 정도로.
이 장소가 내게 안겨주는 압박감. 무수한 의지.
내 발 아래로 로봇의 시체가 쌓여갈 때마다 그 악의는 더욱 짙어져만 갔다.
숨이 막힐 정도로 섬뜩한 시선들이 내게 쏟아졌다.
동료들은 본래 목표였던 공장으로 들어간 것인지 이미 초감각의 범위에서 사라진지 오래.
남은 것은 오롯이 사방팔방에 느껴지는 의지 뿐.
저 로봇 하나하나에 담긴 신호와 의지가 나의 정신을 짓누르고 있었다.
그래서 부쉈다. 내 기분이 편해질 때까지.
그리고 무엇보다.
“시발, 불길한 새끼들.”
나의 정신을 압박하는 것은 그들의 주인이 보내오는 악의였다.
폐허. 이곳은 진실된 의미로 적의 영지(靈地)였다.
매번 빌런들과 싸우며 악의에 노출되는 것에 익숙한 나마저도 압도될 정도의 악의가 쏟아지는 장소.
이해할 수 없는 지식과 불길한 자아가 넘실거리는 진정한 의미로 죽어버린 자들의 영토.
그 아래서 개벽(開闢)을 꿈꾸는 광기가 보였다.
무명사제.
이름 없는 신을 섬기는 자들.
‘아주 시발새끼들이네, 이것들.’
이 땅의 진정한 주인이 내게 시선을 보내왔다.
저 무수한 로봇의 군단은 그 자들의 사병이었다.
미사일이 꽂힌 직후에도 아직까지 압도적인 수를 유지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자기들 땅이랑 군대에다가 미사일을 꽂아버리네. 진짜 또라이들인가?”
미친놈들이었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때, 초감각이 내게 속삭였다.
아니, 누군가의 의지가 내 귓가에 울려퍼졌다.
‘그 무엇도 소유하지 않고 내려놓은 그대야말로 비틀린 자이지 않겠는가.’
“뭔 소리야?”
‘어떤 의미에서 그대가 내린 아둔한 선택을 진심으로 존경한다는 것이지.’
지랄하고 있네.
나는 헛웃음을 내뱉으면서 가까이 다가온 로봇의 심장부를 주먹으로 꿰뚫었다. 등으로 빠져나온 손을 들어올리며 중지 손가락을 내밀었다.
엿-쳐먹어라. 라는 의미의 만국 공통 손가락이다.
“다 닥쳐, 시발놈들아.”
내 마음 속에서 분노의 불길이 치솟았다.
자신조차 이해할 수 없는 분노의 감정이 들끓는다.
이것은 가히 본능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이 장소, 이 목소리, 그리고 이 상황까지도.
모든 것에 분노가 치밀었다.
일련 혐오라고 불러도 될 정도의 격렬한 감정이다.
키보토스에서 눈을 뜨고 이 정도로 분노한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의 감정.
하지만 결코 통제되지 않는 감정은 아니었다.
그저, 내게 명확한 한 가지 사실만을 일깨울 뿐.
무명사제. 저들이 나의 적이라는 사실.
단순한 적이 아니다. 숙적(宿敵). 일말의 살의마저 품게 만들 정도의 격렬한 의지가 깃들었다.
아무래도… 나는 과거에도 이 녀석들을 극도로 싫어했던 모양이다.
“개같은 새끼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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