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9
1.
“캬, 드디어.”
[소속 동아리 : 초현상특무부]
마침내 학생증에 비어있던 공란 중 하나가 채워졌다.
초현상특무부. 이름에서부터 멋있음이 풍겨온다.
내가 누구? 밀레니엄에 세 명뿐인 초현상특무부.
이 정도면 평범한 학생 신분으로는 완벽한 수준이다.
물론 아직까지 이름 부분은 검게 칠해져있었지만 이건 언젠가는 풀리지 않을까.
사실 살짝 포기한 것도 있기는 하다.
지금까지 이름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을텐데 그게 뭔지를 모르겠거든.
그나마 다행인건 편의주의적 설정이라도 발동했는지 사람들이 나를 직접적으로 부를땐 ‘나나시(이름 없음)’라는 이름으로 바꿔서 불리게 되기에 일상생활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이것도 아마 진짜 이름을 얻고나면 나아지지 않을까.
그런 믿음을 마음 한켠에 가지고 있을 뿐이다.
“이제, 거의 다 마무리되었나.”
생텀타워가 완전히 정지되고 벌써 2주 가량이 흘렀다.
전문가들은 자신이 예측했던 시간보다 더 길게 이어지는 무정부 사태에 당황한 모양이었지만 나는 슬슬 때가 오고있음을 직감으로 느끼고 있었다.
블루아카이브의 메인 스토리.
‘선생’이라는 존재가 찾아오는 순간이 말이다.
‘와카모가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고, SRT는 사실상 해체 단계까지 나아갔다. 아마 이 시기쯤에 카야가 FOX 소대에 접촉했으려나.’
과거에 ‘막아야하나…?’ 하고 생각했던 부분들.
하지만 실제로 활동을 시작하니 들어오는 정보도 없을뿐더러 물리적인 거리가 있어서 생각대로 개입하기가 어려웠다.
지금도 꾸준히 방법을 생각해보는 중이긴 했으나, 과연 가능할지는 미지수인 수준.
지금은 밀레니엄과 중앙 자치구 주변에서 발생하는 범죄들 때려잡는 것만으로도 벅찰 정도였으니.
때때로 게헨나나 트리니티 쪽에도 찾아가서 활동을 하기도 했으나 역시 아직까진 중앙 자치구 쪽이 더 많은 범죄가 발생했기에 활동 구역을 좁혔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부분은, 히마리의 도움으로 이제 진짜로 스파이더맨처럼 경찰- 즉, 발키리의 무전을 해킹해서 들을 수 있게 되었다는 점?
내가 하지 못하는 영역을 대신 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 히어로 활동이 훨씬 수월해졌다.
언제까지고 내 감각에만 의존해서 해결할 수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래서일까.
드넓은 도시에서 오직 감각으로만 범죄를 찾는 일이 사라지니 기존의 감각이 다른 방향으로 발전했다.
뭐라고 할까, 나의 위험을 감지하는 일이 더욱 또렷해지고 세밀해졌다고 해야할까.
본래의 감각은 누군가의 ‘행동’을 감지했다면, 지금은 아예 위험한 ‘사건’ 자체를 감지하는 듯한 느낌?
‘그래서 그런지, 요즘따라 묘하게 불안하단 말이지.’
매일매일 시민들을 구하고, 단련도 끊임없이 하고 있음에도 머릿속으로 불안감이 가시지 않았다.
마치, 조만간 무슨 일이 터질것만 같은 불안감이.
이 사실을 히마리와 에이미에게도 전해보았으나 그녀들도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고 했다.
‘적어도 밀레니엄에는 어떠한 위험도 없다고 했지.’
그렇다면 다른 곳에서 무슨 일이 발생하는 것일까.
모르는 일이다. 내가 세이아처럼 미래를 직접 보는게 아닌 이상 정확히 알아낼 수는 없겠지.
그저, 항상 조심하고 또 조심하자고 다시금 마음 속에 되새길 뿐이다.
치지직-!
[카와미나미 역에서 소요 사태 발생! 즉시 지원을 요청한다! 다시 한번 전파한다, 카와미나미 역에서 소요 사태가 발생! 범인은 교정국에서 탈옥한 범죄자로 추정 중이며-]
[현재, 시민들을 인질로 잡고있는 상태다! 지금 즉시 지원을 요청한다!]
물론, 그렇다고 활동을 멈추지는 않았다.
발키리의 무전 소리를 듣자마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얼굴에 익숙한 가면을 썼다.
오늘도 본격적인 활동에 나설 시간이었다.
2.
“후우…….”
늦은 새벽, 이제야 집에 돌아올 수 있었던 나는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가면을 벗고, 위에 걸치고 있던 옷들도 벗자, 순식간에 먼지로 더러워지는 바닥이 보인다.
아, 망할.
이따가 청소해야 되는데, 저것들.
“치우기 귀찮다, 진짜…….”
누가 메이드라도 하나 보급 안해주나.
나는 바닥에 한가득 쌓인 먼지를 바라보며 그리 중얼거렸다. 오늘 도시 곳곳에서 발생한 사건들을 해결하면서 뒤집어 쓴 먼지와 파편들.
어째서인지 요즘따라 폭탄과 불을 사용한 사건이 많이 늘은 탓이었다.
……아니, 그건 원래도 그랬나.
맨날 수류탄 터지고, 탱크 나오고 그러니까 일반적인 상식이 무너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 가면도 바꿔야겠네.”
나는 몇 주 사이에 많이 더러워진 여우 가면을 바라보았다. 슬슬 여우 가면이 아닌 다른 무언가로 바꿔야 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는 듯했다.
나름 정이 들었던 물건인데 이대로 더 혹사 시켰다간 완전히 박살이 나고 말테다.
“…일단 좀 씻자. 아파서 뒤지겠네.”
보는 눈도 없겠다, 과감하게 걸치던 모든 옷을 벗어던지곤 어기적어기적 거의 기어다니다시피 욕실로 들어갔다. 앞머리를 쓸어넘기며 거울을 보자 보이는 것은 낯설기만 한 여체.
나올 곳은 나오고, 들어갈 것은 들어간-
‘…그만하자. 뭐하냐.’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머릿속의 상념을 지웠다.
그리곤 평정심을 되찾은 시선으로 다시금 나의 몸 상태를 살폈다.
푸석해진 하얀 머리와 퀭한 푸른 눈동자.
히마리의 말이 사실인 듯 멍하니 있어도 날카로운 눈매가 인상적인, 꽤 마음에 드는 외모가 거기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몸 곳곳에 나있는 시퍼런 멍과 생채기에서 흘러나오는 핏물이 보였다.
도저히 ‘여고생’으로 보이지 않는 모습.
푸흐흐- 입술 사이로 웃음 소리가 새어나왔다.
스파이더맨이 초감각을 가지고 있는데도 맨날 상처투성이인 이유가 있었다. 아무리 감각이 뛰어나도 모든걸 다 피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특히나 시민에게 튀는 공격은.
내가 몸을 날려서라도 막아야만 하는 것이었으니.
“아, 존나게 아파.”
평소에는 사용하지 않는 경박한 말투.
나는 욕실 벽면에 몸을 기대며 깊은 한숨을 내쉬다 부들거리는 손으로 샤워기를 틀어 따뜻한 물을 몸에다 뿌렸다.
쏴아아-
“으읏.”
물 한방울이 닿을 때마다 따끔거리는 상처.
상처에 물이 들어가는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나는 샤워기를 멈추지 않았다. 왜냐하면-
“흐. 언제봐도 신기하네.”
어느새 몸 전체에 가득 나있던 상처에서 흐르던 붉은 선혈은 멎고, 그 자리엔 피가 굳어서 생긴 딱지만 남아있을 뿐이었으니.
이곳에 떨어져 얻은 능력 중 하나인, 재생력.
물론 데드풀이나 울버린처럼 몸이 관통당하거나, 신체 일부가 사라져도 바로 수복되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냥 재생이 조금 더 빨라질 뿐이다.
생채기는 금방 아물고, 지쳤던 체력은 금방 차고, 온 몸에 피멍이 들더라도 며칠 자면 사라지고.
뭐, 그런 식이다.
‘아마 이런 능력도 없었으면 진작에 죽었겠지.’
이왕 고통까지 줄여줬으면 좋겠는데 이 망할 능력은 회복되는 순간에 짜증나게 고통을 안겨주었다.
그래서 보통 이런 식으로 샤워를 하지 않으면 저도 모르게 자는 와중에 비명을 지를지도 모른다.
활동 초반에는 실제로 그랬었지…….
후우, 절로 한숨이 내뱉어진다.
따뜻한 물로 몸을 쓸어내리자 쌓였던 피로가 단숨에 몰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윽, 뒤질거 같아.
“……요즘따라 왜 이렇게 힘들지.”
평소처럼 히어로 활동을 하고 있는데도, 어째서인지 요즘 활동을 할때마다 피로가 엄청나게 쌓인다.
딱히 사건의 양이 많다거나, 조금 더 힘들다거나 하지는 않았는데도 말이다. 그저 신경 쓰이는 부분이 조금, 아니 조금은 아니고 많이 있을 뿐.
“감각아. 좀 꺼져봐…….”
그리고 대체로 그 원인은 시도 때도 없이 미친 듯이 발광하는 초감각. 뭔가 큰 위험이 온다며 소리는 치는데 그게 뭔지는 모르겠으니 피곤하다.
심지어 요즘따라 붙잡히는 범죄자마다 거의 다 교정국 죄수들인 것도 마음에 걸린다.
이번에 무정부 사태가 되면서 많은 교정국 범죄자들이 탈옥을 했다는 사실은 알지만 그래도 이상하다.
뭐라고 할까, 인위적이라고 해야할까.
근데 무엇이 원인이고, 인위적인지를 판단하지 못하겠다.
“아, 머리가 안굴러가.”
미친 듯이 혹사를 당한 탓일까, 평소에는 데굴데굴 잘 굴러가기만 하던 머리가 기능을 멈췄다.
뭔가가 있는건 확실한데, 뭔지 모르겠어.
이걸 누구한테 물어볼 수도 없고-
“…….”
물어봐?
아니, 잠깐만.
“아. 그 방법이 있었네.”
나는 곧바로 욕실 문밖으로 손을 뻗어 핸드폰을 가져왔다. 그리고 전화를 연결해 스피커폰을 켰다.
♩~ ♪♩~ ♬~~
…뭔가.
묘하게 나이 들어보이는 벨소리가 이어진다.
대충 네다섯번의 연결음이 이어지더니 이윽고 핸드폰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어머, 나나시 후배. 무슨 일인가요?]
“히마리 선배. 지금 시간 괜찮으세요?”
내가 전화를 건 대상은 다름아닌 히마리였다.
그녀는 무언가 일을 하고 있었는지 삑삑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통화 너머에서 들려왔다.
…이 시간에도 일을 한다고?
너 병약 미소녀 맞냐? 컨셉 어디갔어.
[후훗, 그럼요. 근데 목소리가 울리는거 같은데 지금 어디신가요? 아직도 밖에서 활동 중이신-]
“욕실인데요.”
[네? 욕실이라니…, 그럼…….]
우리 선배님, 그걸 물어보면 안된다는걸 모르네.
나는 입꼬리를 쭈욱 찢으며 말했다.
“저 알몸이에요.”
[…….]
“홀딱 벗었어요. 완전히. 아무것도 없음.”
[이, 이상한 표현 쓰지 마세요!]
“하지만 사실인걸 어떡해요. 이제 막 씻기 시작해서 온 몸에 물기가 가득-”
[그, 그만하세요…! 숙녀가 무슨 나, 남사스러운…!]
내 상태를 당당하게 말하자 통화 너머로 당황한게 보일 정도로 말을 더듬기 시작하는 히마리.
음. 이 정도면 만족한다.
히마리의 그런 모습에 작게 웃음을 흘리자, 통화 너머로 내 웃음소리가 들렸는지 히마리가 귀엽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이잇…! 일부로 그런, 부끄러운 말 쓰지 마세요…! 선배를 놀리다니, 저는 그런 당돌한 후배를 키운 적 없다구요……!]
“에이미랑 같이 지내시면서 이런 쪽에는 내성이 없으시네요?”
[그, 그거랑 이건 다른 이야기에요…!]
“푸흣. 그런가요.”
하긴, 트리니티의 코하루도 야한건 엄청나게 보면서 맨날 입에다가 사형, 사형이라며 달고 다니는데.
…이거랑은 이야기가 좀 다른가?
아무튼.
“별건 아니고 선배한테 좀 여쭤보고 싶은게 있어서 전화했어요.”
[흠흠! 후우, 좋아요, 후배의 부탁인데 기꺼이 도와드릴게요. 어떤게 궁금하신가요?]
나는 간신히 평정을 되찾은 히마리에게 간단히 설명을 했다.
그러자 잠시 진지하게 설명을 듣던 히마리가 뭔가 불길하기 짝이 없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배후가 있나보군요.]
“예?”
이젠 내가 당황할 차례였다.
그, 그게 무슨 소리니. 히마리히마리야.
배후가 있다는거면 지금까지 일어난 교정국 죄수 사건이 죄다 누군가의 지시로 이루어진 일이란 뜻?
[저도 어렴풋이 들은 이야기지만, 최근 알 수 없는 방향에서 블랙마켓으로 폭발물과 무기들이 대거 유통되고 있다고 해요. 아마 최근에 발생한 사건들 모두 이것과 연관이 있을거라고 생각해요.]
“그럼, 그 물건들의 유통책이 배후다?”
[아뇨. 아무리 유통책이 뛰어난다 한들 교정국 죄수들을 통합시켜 일제히 테러를 감행하게 하는건 불가능하죠. 그건 돈으로도 불가능하니까요.]
하긴, 애시당초 붙잡혀서 다시 교정국으로 끌려갈게 뻔한 일을 돈으로 시킨다고 할 리가 없지.
…그럼 배후가 누구라는거지?
“그렇다면 히마리 선배는 정확한 배후가 누구라고 생각하세요?”
[……뭔가 저를 모르는걸 알려주는 만능 로봇으로 생각하시는거 같은데, 착각인가요?]
“헉.”
들켰다.
이게 전지(全知)?
[후후, 이번만 봐드리도록 할게요. 나나시 후배님. 하지만 다음번부터는 대가를 받을테니 각오하세요?]
“가, 감사합니다.”
[농담이랍니다. 저는, 그렇네요. 아마 후배님도 들어봤을 거라고 생각해요.]
히마리는 잠시 뜸을 들였다가 강조하듯 말했다.
[일곱 죄수 중 한 명, 코사카 와카모.]
“……?!”
[그 여자가 아마 이번 사건의 배후이지 않을까,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답니다.]
시발.
니가 왜 거기서 나와.
“왜…,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인지-”
[‘재액의 여우는 간사하고 요망해 말 몇마디면 홀려서 발걸음이 먼저 떨어지더라’, 들어본적 있나요?]
“…….”
와카모가 저런 설정이 있기는 했는데.
히마리는 교정국의 죄수들이 일제히 소요 사태를 발생시킨 이유가 있을 것이고, 그 배후에는 와카모가 있을 것이라 말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교정국에서 이제 막 빠져나온 불량학생들을 통제하고 행동하게 만들 수 있는건 그녀 뿐이었으니.
[그녀가 ‘재액(災厄)’의 이명을 부여받은 이유는, 그녀가 백귀야행에서 통제할 수 없는 학생이었기 때문도 있지만 그녀의 행동, 말, 손짓 하나하나가 재액을 불러왔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답니다.]
“…….”
[때마침 D.U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이 이전과 달리 폭발과 관련된게 늘어났다고 했었죠? 인명 피해를 유도하고, 어떤 식으로든 인위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는 흔적을 곳곳에 뿌려두었다고.]
“확실히 그랬습니다만….”
[정확한 목적은 아직 모르겠지만…, 모두 그녀가 저지르는 방식의 공격 방식이네요.]
코사카 와카모.
백귀야행의 정학생, 그리고 일곱 죄수.
만일 이번 사건들의 배후가 정말로 그녀라면…….
‘언젠가는 그녀랑 싸우게 되려나.’
프롤로그도 시작되지 않았는데 와카모와 싸움이라니.
벌써부터 고생길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하아, 벌써부터 피곤하네요. 일곱 죄수라니.”
[후훗. 언젠가는 더한 괴물이랑도 싸우실텐데요, 뭘.]
“…….”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무언가를 암시하는 듯한 말을 내뱉는 히마리.
그녀가 뭘 말하고 있는지는 대충 짐작된다.
데카그라마톤, 그리고 게마트리아.
블루 아카이브의 주적. 그 놈들을 말하는 것이겠지.
“아무튼 도움주셔서 고마워요, 선배.”
[뭘요. 귀여운 후배의 요청인데 들어줘야죠. 저는 밀레니엄 최고의 병약 미소녀 선배니까요?]
“아, 네. 히마리 언니 최고.”
[……언니라니, 꽤나 듣기 좋은 울림이네요. 후후후.]
언제나와 같은 히마리의 자뻑에 쓴웃음을 흘리고 있을 무렵, 문득 통화 너머에서 호기심으로 가득찬 히마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서 후배님, 저도 궁금한게 있는데.]
“뭔가요.”
또 무슨 질문을 하려고.
[와카모, 이길 수 있나요?]
“…….”
나는 침묵했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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